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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목회합니다.

by Missionmaker21 2025. 10. 18.

글 제목: 저는 이렇게 목회합니다

글쓴 이: 임의택 선교사

 

서론

 

저 임의택 선교사는 한국에서 2000년 1월부터 2004년 3월까지 목회를 하다가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매우 짧은 시간 목회의 경험이 지금까지의 선교지 목회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태국에서 태국인 교회개척과 목회를 20년 가까이 해 오고 있습니다.  함께 동역자 된 선교사들과 함께 저희 작은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를 목회하는 데는 여러 요소들이 요구되지만, 그 중에서도 필수적인10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글에서는 성경 본문을 구속사적(구속 역사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며,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가 놓쳐서는 안 될 핵심적인 요소들을 제시합니다. 이 요소들은 단순히 교회 성장의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비추어 교회가 그 본질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자라나기 위한 필수적인 기초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핏 값으로 사신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목회 (디모데후서 3:16-17)

 

교회를 목회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목회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에서 사도 바울은 성경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를 세우고, 그 안에서 성도들이 성장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이끄는 기본적인 수단입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성도들이 구속받은 백성으로서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1) 말씀 중심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놀라운 사건을경험하게 합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 5-11절의 내용은 과연 말씀이 어떻게 육신이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같이 당신을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나님 자신을 비워 종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들과 같은 육신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당신을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이신데 사람으로 되시기까지 낮아 지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것 뿐만이 아니고 죽기까지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셨습니다. 그 복종하심은 십자가에 당신을 못 박으시고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주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더니 하늘에 있는 자들, 땅에 있는 자들, 땅 아래 있는 자들의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 아래에 꿇게 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사역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 중심의 목회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말씀 중심이라는 말씀의 뜻은 즉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10년이 넘도록 설교의 제목을 예수님이 중심이 되도록 준비했고 또한 예수님의 사역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과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삶의 모습들을 설교 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예수님, 삭개오를 찾아 가신 예수님, 선한 사마리아 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해 왔습니다. 10년치의 설교 제목을 보면 거의 모두가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으로 그 주어를 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전해야 할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태국 사람들에게 바르게 소개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 중심의 목회라 봅니다.  

 

2)말씀의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성경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의 전체 내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5:39-40)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무엇으로 해석하느냐입니다. 많은 방법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의 전체 내용에서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라는 사실과 모든 성경의 내용을 예수로 읽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특정인물의 무용담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위인전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그 분을 통해서만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하기에 앞서 그 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 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분을 알게 되고 그 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서야 비로서 성경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예수 아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이 선교사로써 이 땅에 전해야하는 유일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핵심은 예수님을 통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아니 당신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간이 되셔서 그들의 죄악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의 서사시 입니다. 또한 승천하시고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그 백성들에게 보내 주시고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하시는 사랑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주님을 영접할 준비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아니 받아 들일 마음이 일 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영이신 하나님의 참 사랑의 이야기가 신구약 성경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이 이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고, 또한 앞으로도 이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이곳에 오로시 서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주요 내용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대행진의 역사가 구약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모든 내용에 관여하십니다. 구약의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행되고 있고 또한 그분의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이 내용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곧 자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임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을 읽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읽고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으며 올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결코 율법서로 읽어서는 안됩니다. 율법 한 줄 한 줄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관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약에 모든 내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신약의 주요 내용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 사역의 결과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곧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드디어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것 역시도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음이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산상수훈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5장-7장까지의 내용을 산상수훈이라해서 교훈적인 내용으로 해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우리 중심으로 해석하면 옳지 않은 해석이 됩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예수님의 사역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심령이 가난한 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직 나의 구원을 위해서 온유한 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오직 날 위해서 핍박 받으시고 고난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날 위해서 하신 그 귀한 사역을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또한 신약의 내용은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소원인 택한 백성들과의 함께 하심, 즉 임마누엘 하심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일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교회를 부르시고 교회로 세워 주셨습니다. 교회의 사명이 곧 그들을 찾아 나서는 선교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에 무엇을 전할 것인가를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생각을 말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지식을 전달하거나  우리가 살아 온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만을 전하는 자로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우리가 유일하게 전해야 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예수를 전하는 자 입니까? 아니면 기독교의 삶의 원리 혹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을 전달하는 자 입니까?  성경을 빙자한 설법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역사들을 알고 계십니까? 이 구원의 역사들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또한 그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해야 할 설교의 내용입니다. 

 

성령의 사역 및 역할

말씀이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해서 보혜사로 오신 성령을 드러내야 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에게 소개 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태초부터 시작됩니다. 그 이전의 일은 우리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의 범주 안에서 성령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창조에 관여 하십니다. 그리고 삼위로써 그 사역을 하십니다. 구약의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가나안 땅에 인도하시고 정착하게 하시고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인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그분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기억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매 순간마다 안내하시고 보호하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요, 아버지 하나님의 영으로써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우리 안에 거하셔서 당신의 백성임을 인쳐 주십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경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듣는자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성령의 능력

  성령의 능력은 그 어떤 누구도 제한하지 못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그리고 그 누구의 제한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때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건들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십니다. 나와 같은 죄인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가끔식 우리의 믿음의 정도가 성령의 능력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창조주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믿는 자는 언제나 성령의 음성에 민감히 반응합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을 기뻐하셔야 합니다. 또한 순종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목회하는 데 가장 필요한 요구사항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더욱 절실해 지는 것이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행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실패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령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내야 합니다. 물론 우리를 거룩하게 지켜내는 일도 내 힘과 능력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늘 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를 목회할 때 그 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2. 예배에 집중하는 사역 그리고 기도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사람의 본분도 예배입니다. 선교의 주된 목적도 예배하지 않는 자들을 예배자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 목적도, 선교의 최종 종착역도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하지 않는 자들을 예배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부르심을 받드는 것이 우리가 가장 집중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1)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의 존재 목적 자체가 예배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준비 되지 않은 예배를 싫어 합니다. 예를 들면 예배 순서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끼어드는 순서를 참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담임교역자가 모르는 준비되지 않은 순서를 예배중에 제안하거나 예배와 관계되지 않은 부분을 끼워 넣으려 할 때 과감하게 거부 의사를 밝힙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우리의 생명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만홀히 여겨서는 결코 안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예배를 드려서도 안됩니다. 순서 하나 하나가 잘 준비 되어질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는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예배를 받으셔야 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기념예배라든지 사람의 업적을 칭송하는 예배를 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이 높임받는 예배는 과감히 거부해야 합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드리고 기념할 일이나 특별한 순서가 있을 경우 예배가 마쳐진 후 따로 순서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예배자인가 예배를 보는 자 인가? 솔직히 고백하는데 신학생이 되고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지만 저는 예배를 드리는 자이기보다 예배를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왔는지, 누가 결석을 했는지, 누가 마음의 상처를 잔뜩 받아 슬퍼하는지, 누가 장난을 치는지…왜 그것이 궁금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나의 예배를 받기를 원하시는데 말입니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후 저는 지금도 변함없이 예배자로 서 있습니다. 내가 예배하지 않는데 누가 나의 모습을 보고 예배하겠습니까! 저는 주일이면 맨 앞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정말이지 진정한 예배자가 되고 싶어서 몸부림을 칩니다. 나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늘 예배자로 서 있습니다. 

 

2) 찬양팀 운영

저희 교회는 찬양이 아주 뜨겁습니다. 우리의 찬양이 주님께 온전히 드려집니다. 토요일이면 찬양팀이 어김없이 와서 주일의 찬양을 준비합니다. 그 준비하는 과정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연습에 빠지는 찬양팀 멤버는 주일에 팀으로 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는 준비 되지 않는 찬양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찬양팀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토요일 찬양팀에 참여합니다. 이 모습이 곳 예배자의 진정한 모습이라 믿습니다. 

 

3) 예배 준비

금요기도회에 반드시 기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를 위한 기도입니다. 특별히 주일 예배 순서자들을 위해 금요기도회 때부터 기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예배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일이면 예배 전에 셀리더들이 모여서 먼저 기도회를 갖습니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뜨겁게 예배 순서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드려지게 될 예배를 묵상하며 주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매우 귀중한 시간이기에 셀리더들에게 이 시간을 반드시 지킬것을 요청합니다. 청소 상태를 보고, 의자의 정리 정돈 상태를 점검하고 방송 시스템과 예배 순서자들의 출석을 체크합니다. 잘 준비 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정신없이 헐레벌떡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준비없이 떼우기식의 예배는 더더욱 드려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4) 예배 모범

예배는 가장 잘 준비된 상태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는 예배에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넣어 진행합니다. 어떤 특정인이 휘젓는 듯 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사람이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예배 사회자는 어떻게 예배를 인도해야 하는지, 기도자는 어떻게 기도를 일 주일 동안 준비하는 지를 인지 시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장로교 예배 모범을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장로교 목사로 목회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예배의 모범은 오랜 세월동안 검증 받고 또한 실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듯한 예배의 진행은 용납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는 반드시 찬송가를 많이 부르도록 합니다. 찬송가는 곡조 있는 기도의 내용이요 특별히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찬양은 될 수 있으면 예배 시간에 부르지 않도록 안내합니다. 

    

 

2. 기도의 삶과 사역 (사도행전 6:4)

 

교회의 지도자는 기도의 사역에 헌신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6:4에서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 집사들을 세웠습니다. 교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의 삶이 필수적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교회의 모든 사역이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함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구속사적으로, 기도는 예수님의 중보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너무도 바쁩니다. 왜 바쁜지 모르게 바쁩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시간을 정하고 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저와 아내는 저녁 9시가 되면 찬양을 함께 25분정도 합니다. 성경을 읽고 나눔의 시간을 갖습니다. 서로 돌아가며 기도를 합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꿀과 같은지 모릅니다. 기도가 쌓여있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기도 할께요라는 말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 하다보면 잊고 지나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한 두번 이 아닙니다. 그런데 매일의 삶 속에서 시간을 정해 기도하면 기도의 짐이 가벼워 집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매일 매일 기도하게 됩니다. 

시간을 정하십시요. 그리고 하십시요. 하면 됩니다. 어렵기도 한데 하면 됩니다. 뭐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하면 해 집니다. 그러다가 주신 말씀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면 기도의 깊이가 매우 깊어 집니다. 뭔가를 달라는 기도는 잠시 할 수 있지만 그 깊이가 깊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한 기도는 우리의 기도를 풍성하게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해 보십시요. 기도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원천이신 예수님과 깊이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간구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이 왜 가능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간구가 되기에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기도하는 자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3. 성령의 인도와 역사 (갈라디아서 5:16-18)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 교회를 목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갈라디아서 5:16-18에서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하며,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성령은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분입니다. 성령의 인도는 교회 내에서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교회의 모든 사역은 헛된 것이 됩니다. 

 

1)성령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자주 오해하곤 합니다. 신비로운 체험을 위해 이색적인 현상들을 찾아 다닙니다. 한국의 많은 이단들이 이 신비로운 체험을 마치 성령의 역사하심이라 속이고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거기에 빠져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주신 말씀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성경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역사들만이 성령의 사역입니다. 무질서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질서와 절제속에서 일어납니다.  모든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강력하게 사람들속에 역사하시며 전적인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신비로운 체험을 한 후 그들은 자신들의 체험속에 자신들을 가두고 자신들만이 특별한 사람인 체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은 모든 이들에게 평안함을 주며 위로하며 예수 그리스께서 주시는 평강이 넘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을 막 쓰러트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그리고 복음의 확산으로 이어집니다. 신비로운 체험을 통한 자기만족이 절대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나타난 현상을 복음의 급속한 확산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뜨거운 성령의 역사하심과 함께 주의 복음이 신속히 확산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복음전파와 아주 밀접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성령의 열매는 9가지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부터 23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아홉가지의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많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노력도 많이 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24절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아홉가지의 열매를 맺는 중요한 단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그 궁금증을 풀어 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곧 누구인가!  그는 곧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사람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이미 맺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가되어 그 또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은 사람으로 여겨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늘 넘어지고 자빠지는 우리의 모습은 결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당신을 믿는 모든 자들을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은 사람으로 인쳐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하나가 된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오직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우리의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교회는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 (요한복음 13:34-35)

하나님의 교회는 사랑이 넘치고 서로가 서로를  섬겨야만 하는 공동체입니다.  요한복음 13:34-35에서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며, 그 사랑을 전할 때 세상은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사랑으로 결속된 구속 공동체이며,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섬겨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이 사랑의 공동체로 자라날 수 있도록 이끌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 가르침은 목회자 자신이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삶이 없는 가르침은 결코 그들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헌금에 대한 부분은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1)십일조와 헌물

   사실 헌금에 대한 부분을 가르치기가 참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재정관을 갖도록 하는 것은 목회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모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인정할 때 그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삶이 가능해 집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께 진정한 헌금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헌금을 했으니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주시리라 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모든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결코 예물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이든 헌물이든 하나님의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더욱 드러내야 합니다. 

   더 받기 위한 예물생활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잘못된 방식의 예물 생활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물을 드림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께 이렇게 드렸더니 이 만큼 주셨더라 라는 영웅담 비슷한 이야기고 성도들을 매도해서는 안됩니다. 

   헌금 생활은 우리가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에 대한 반응이요, 당연한 의무임을 그들이 믿을 때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싫어 하시는 억지로 내는 예물을 여전히 드리게 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은 백성이 누리는 영적 자유함 속에서 가능케 되는 헌금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후 자발적으로 드리는 예물 생활이 나와 있지 않습니까!  서로 드리고 싶어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8장 1-15절에 나타나듯이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로 나타났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5.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 (에베소서 5:25-27)

 

   교회의 거룩함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속 사역의 핵심입니다. 에베소서 5:25-27에서 바울은 교회를 예수님이 사랑하사 자신을 주신 이유는 그 교회를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거룩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주신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으심으로 시작된 우리의 거룩함이 곧 우리의 거룩이요, 순결입니다. 솔직히 물어 보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거룩합니까? 그리고 순결합니까? 이 물음에 저는 아니요라고 담대히 외칩니다. 나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순결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이루어 놓은 그 구원을 내가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드릴 뿐입니다. 그런데 그 고백후에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들어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향해 너는 거룩하고 순결하다고 선포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이 이 사실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 성경의 기록을 믿는 것이 곧 거룩이요 순결입니다. 나의 삶의 모습이 아닌 내 안에 계신 주님의 거룩함과 순결하심을 믿는 것이 거룩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공동체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이 거룩함을 우리의 헌신과 노력으로 가능한 것처럼 가르치는 모든 노력을 우리는 중단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순결하려 한다면 우리는 결코 거룩해지거나 순결해 지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신 그 사랑으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은 거룩하십니까? 순결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믿는 예수님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거룩하심과 순결하심이 나와 함께 하기에 교회는 거룩한 것입니다. 그리고 순결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권징과 치리가 필요합니다. 권징과 치리가 없으면 하나님의 교회를 우습게 보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인데 그 의미를 순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권징과 치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 물론 목회자 자신도 이 법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6. 제자 훈련과 성도 양육 (마태복음 28:19-2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28:19-20에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 훈련은 교회의 필수적인 사명입니다. 구속사적으로, 제자 훈련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사역을 교회를 통해 계속해서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도와야 하며, 이를 통해 성도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1. 세례를 받으려면 4개월의 양육과정을 거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일대일 제자 양육교재를 사용합니다. 매우 유익한 훈련을 위한 교재라고 믿습니다. 물론 교재를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 합니다. 구원의 확신 속에서 성도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설명하는 좋은 모범이 되는 교재입니다. 이 과정 가운데 2번을 결석하면 자동 탈락합니다. 다음에 다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물론 구제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빠진 경우 주 중 다른 날을 잡아 반드시 보충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빠트리고 지나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정이 끝나면 시험을 보게 합니다. 그런 후 통과가 되어야만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행사를 위해서 세례를 베풀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2. 좋은 교제를 선택하여 뚝심있게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전 교인들이 모두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셀리더들 훈련을 통해 또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소요리 문답을 차근차근 해 나간다든지, 특별한 주제를 몇 주간 지속적으로 가르칩니다. 물론 외부 강사를 초청할 수 있다면 초청하여 가르침을 받는 것도 매우 유익할 수 있습니다. 

 

 

 

7. 선교와 복음 전파 (사도행전 1:8)

 

교회의 또 다른 핵심 사명은 선교와 복음 전파입니다. 사도행전 1:8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적 공동체로서, 지역과 전 세계에 하나님의 구속의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며, 성도들이 선교의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1. 처음부터 선교하라

저희 교회는 감사하게 새로운 전도처가 생겼습니다. 나컨빠톰 클렁진다 싼띠팝 전도처입니다. 이곳에 2주에 한 번 수요일에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며 성도의 교제를 갖습니다. 이 때 저희 교회는 보통 10-15명 정도의 성도들이 참여합니다. 차량 3대 혹은 4대가 가기도 합니다. 많은 비용이 들지만 성도들에게 함께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성도들은 기쁨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딛는 그들에게 아직 믿음이 연약하다 생각했던 성도들이 그들 앞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처럼 성경을 찾아 주고 찬양을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매우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곳으로 복음이 확산되어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목회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선교 단체나 지방에서 목회를 하는 사역자들을 지속적으로 돕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교회의 사역입니다. 10여년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입니다. 

 

  1. 예산을 편성하라

매 달 선교비로 나갈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여 집행합니다. 계획적인 예산 편성과 집행은 선교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게 합니다. 아직 형편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라 많은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고 있지만 단기팀이나 방문하시는 교회들에게 취지를 잘 설명하여 함께 참여 할 수 있도록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동참하는 교회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함께 이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예산을 늘려 가야 합니다. 모든 지혜와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함께 짊어 지도록 하라

선교와 복음 전도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사역자 혼자 가면 훨씬 비용이 덜 들 수는 있지만 교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자신의 일을 잠시 접고 전도하는 일과 선교하는 일에 동참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자신들이 선교하는 일과 전도하는 일에 헌신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는 곧 자신들이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는 마음을 갖게끔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목회의 현장에 많은 유익함을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로 하여금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이 아닌 함께 사역하도록 해야 합니다. 

 

8. 연합과 일치 (에베소서 4:3-6)

 

교회 안의 연합은 매우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4:3-6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교회는 한 몸으로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하며, 모든 성도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합니다. 구속사적으로, 교회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 구속 공동체의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1. 셀그룹을 적어도 1년에 한 번 바꾸라. 

저희 교회에서는 그룹을 12개로 나누어 주일 오전 말씀을 가지고 주일 오후에 나눔을 합니다. 셀리더들이 그룹을 안내하며 나눔지를 준비하여 나누게 합니다. 주일 오후에 나눔을 하기 전에는 뜨거운 찬양을 20분정도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간증이 이어집니다. 서로의 사정을 알게 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성도들의 상황을 알게 되고 함께 기도하게 되면 성도들이 하나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도의 응답을 하셨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오래되면 자기의 그룹에 있는 사람들만 알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정도는 멤버의 교체를 통해서 서로를 더 깊이 알아 가게 합니다. 

 

  1. 갈등과 해소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해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갈등은 교회의 부흥에 큰 저해 요소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는 그들의 생각을 들어 주고 그 상황에 맞는 말씀과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질문을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의 해결책을 찾아 가도록 안내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도 말하기는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말씀이 안내하고 말씀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갈등으로 인하여 아직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특별히 공식적인 기도 모임 자리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면 갈등의 중심에 있는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1. 은사대로

교회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10년동안 신앙생활 했는데 아직 교회에 빗자루를 잡아 본 적이 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 아이들을 말씀으로 잘 가르칩니다. 어떤 성도는 남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봉사하는 일은 그 어떤 누구보다 잘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찬양의 은사가 있어서 찬양을 인도할 때마다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다른 은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참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9. 경건한 리더십 (디모데전서 3:1-7)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는 경건하고 신실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1-7에서는 교회의 지도자는 흠이 없고, 가정을 잘 다스리며,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회는 목회자의 경건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게 됩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경건함을 유지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으로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1.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부르신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굳건히 믿을 때 우리는 주님의 사역을 힘 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선교사는 소명의식이 없으면 주어진 사명을 결코 감당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사명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감당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명으로 일하는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태국 선교사로 불러 주셨고 이 때까지 인도하셨다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간혹 왜 접니까? 라는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1. 목회자의 영성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누가 저에게 하루에 기도는 몇 시간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기도의 시간이 생각외로 너무 짧거나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정했습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에 있어도 우리는 기도의 시간을 지켜려 노력합니다. 이제 손님으로 오신 분들도 함께 우리의 기도시간에 함께 예배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정확하게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아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 정신없이 말하는 것이 아닌 정확하게 또박또박 아룁니다.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간구를 합니다. 

 

      말씀은 목회자에게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결코 등한시 하면 안됩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내가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들으려 합니다. 그래서 목회는 책상 목회라는 말도 있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느냐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사무실에 출근하여 책상을 벗 삼습니다. 그래서 좋은 의자와 좋은 책상을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말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좋은 책들을 선별하여 읽어야 합니다. 물론 최고의 교과서는 신구약 성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좋은 분들의 글을 통해 안내를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좋은 멘토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첫번째 안식년 때에 만난 목사님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전해져야 하는 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좋은 책들이 구분이 되어 졌으며 성경의 전체 내용이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겸손은 참 쉽지않는 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녀야만 하는 목회자의 덕목입니다. 너무도 쉽게 빠져드는 교만한의 늪은 쉽게 빠져 나올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겸손함을 갖추어야 합니다. 먼저 교회의 빗자루를 듭니다. 그리고 먼저 신발정리를 합니다. 대접을 받으려 하기 보다는 제가 먼저 대접을 하려 합니다. 사랑을 받기 보다는 먼저 사랑하려 합니다. 

   

      성령의 사람의 사람인척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빨리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인 척 하는 것이 아닌 진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엎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분열이 영이 심하고 음란의 영이 강력한 이 땅 태국 땅에서 날 지켜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끼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요청해야 합니다. 늘 성령님과 이야기하며 지내는 삶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결코 쉽지는 않지만 습관이 되면 성령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3) 목회자의 자질

     

 성실

 목회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목회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매일 출근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사무실에 저의 집 바로 위층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그 출근길이 너무도 멀게 느껴집니다. 출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가운데 있어도 반드시 출근을 합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왔을 때 목회자가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가면 언제나 목회자가 있다는 생각이 작은 부분일지 모르지만 교회 부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약속입니다. 저의 경우는 30분 혹은 1시간 먼저 가서 준비하든지 기다립니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약속한 시간을 어긴다든지 늦게 오면 교인들은 그 목회자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 작은 부분이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아주 크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저는 가끔식 나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나는 목회자로써 몇점일까? 우리 성도들은 나에게 몇점이나 줄까?  결론은 성도들이 봐 줘서 내가 지금까지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에 특별히 언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이 순종하며 왜 나의 목회 방침을 따라 올까라는 질문에 그들이 날 잘 봐줘서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압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목회자가 얼마나 기도하는지, 설교 준비는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나의 설교를 듣는 대부분의 성도들의 나의 상태를 안다는 사실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회자의 삶

      디모데전서 4:12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게 하라”. 본을 보인다는 것을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본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본은 내가 얼마만큼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만큼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삶은 그 자체로 나를 대변합니다. 본을 보이는 삶이란 내가 주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 보아야 가능합니다. 그냥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해 보았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면 참 쉽습니다. 주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내가 그들에게 본을 보이는 일일 것입니다. 잘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예수 믿는 자의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10. 헌신적인 교사와 목양 (베드로전서 5:2-3)

 

마지막으로, 목회자는 헌신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목양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2-3에서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목회자는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는 목자의 역할을 다해야 하며, 이를 통해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섬겨야 합니다. 

 

결론

 

목회는 스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부분들입니다. 목회의 기술을 배워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모든 노력을 거부해야 합니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주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중심의 목회를 해 나가야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목회를 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기 위해 목회를 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찬양 받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목회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들은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한 요소들입니다. 

 

말씀 중심 즉 예수 그리스도 중심, 기도, 성령의 인도, 사랑과 섬김, 거룩함, 제자 훈련, 선교, 연합, 경건한 리더십, 그리고 헌신이 이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저의 작은 글을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